삶의 빈자리
김진엽(미술평론가)
1.
김춘재의 풍경은 어둡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는 클레의 말처럼, 김춘재는 풍경보다는 풍경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어둠을 통해 풍경을 강조하는 것도 있지만 풍경을 삼킬듯한 아득한 어둠은 모든 이야기를 중단시킨다. 그러한 침묵은 감각이나 사색적 명상, 성찰로서는 파악할 수 없다. 어둠이 만들어 낸 풍경은 실존적 자의식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풍경은 현실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본질적으로 직관함으로써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
동양화과 출신인 김춘재는 현재 페인팅 작업을 하면서도 여전히 동양화의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화면은 전통적인 동양화의 구도를 보여주는데 다른 점은 여백을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 초창기 김춘재는 도시 풍경을 주로 표현하면서 삶의 정체성과 혼란을 겪고 있는 시대의 자화상을 담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동시와 예술의 역할과 예술가란 직업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따라서 초창기의 일그러진 자취를 남기는 도시 풍경들은 바로 그러한 고뇌의 소산이었다.
몇 년 전부터 현재의 풍경 작업에 몰두하면서 김춘재는 예술과 예술가란 직업에 대한 긍정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치열한 작업을 통해 현재의 작업에 이르렀다. 회의와 고통의 시간을 극복하면서 만들어진 풍경 작업은 그래서인지 짙은 정감과 깊은 호소력으로 다가온다.
3.
김춘재가 전통적인 동양화를 서양화의 방식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공통점은 배경인데, 특히 검은색의 여백이다. 이러한 검은 색의 배경은 동양화의 여백이 가진 공(空)의 발현태를 넘어서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검은 여백은 모든 사유의 과정이 정밀하게 집약되어 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견고하다.
어두운 배경은 단순히 풍경을 강조하거나 풍경을 삼키려고 하지 않는다. ‘내 속에 담긴 허공’처럼 풍경과 어둠은 하나의 몸 같은 것이다. 고통과 절망의 원인은 존재의 불확실성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삶의 과정에서 자기 존재를 찾기 위해서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기존의 시각과 다른 전도된 시각을 통해 김춘재는 참된 풍경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통적인 동양화가 원경을 중심으로 시점의 변화가 나타난다면 서양화의 화법은 근경의 시점에서 변화를 지속한다. 김춘재의 작업은 이러한 동서양화의 변이 과정을 다인칭 시점으로 변화시킨다. 어둠의 여백, 외형적 원경과 내면적 근경을 조화시키는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조형적 어법을 확장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상 인식의 연쇄 고리를 통해 예술적 깊이와 소통의 폭을 확장시킨다.
이러한 작업 방식의 특징은 자신의 존재 부정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한으로 자신의 자아와 작업을 몰아가는 것으로, 그 작업의 끝에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고 그 세계를 구성하는 새로운 지평이 드러난다. 허무와 고통을 딛고 극한의 경지에서 비로소 ‘공’(空)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래서 김춘재의 작업은 무겁고 닫힌 공간이 아니라 생동감 있는 열린 공간이다.
4.
김춘재의 작업은 ‘실재’와 ‘상징’이라는 대척점을 능숙하게 조화시키고 있다. 사회체계에서 부정적인 상징과 긍정이라는 현실의 실재를 같은 지평에 융합함으로써, 작가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융합은 관념이나 개념이 아닌 자연의 영역에서 나타난다.
작가는 자신의 감각을 자연으로 향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을 대립이 아닌 ‘함께-있음’(mit-sein)으로 이해하고, 세계라는 실존적인 상황에서 인간과 자연을 세계에 ‘함께-거주하는’(mit-leben) 존재로 만들었다. 강과 숲으로 구성된 화면은 각각의 가치를 가진 존재자들이 아니라, 현실과 내면을 함께 표현하는 그럼으로써 일상의 삶의 부조화를 채워줄 수 있는 함께하는 존재자들인 것이다. 그저 바라보는 감상의 대상이나, 정복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거주하는 강과 산, 나무들은 우리들의 비워진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요소들로 작용한다.
궁극적으로 김춘재는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두운 배경은 화면에 대한 몰입이나 자아의 내적 질서와 균형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자아의 성찰로서 어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 삶에 대한 진정한 현실 인식을 수반함으로써 어둠이 나타나는 것이다.
존재의 본질이 스스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은폐된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은폐는 장애가 아니라 인간 실존의 조건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삶의 방식이 바로 은폐이다. 그러나 진정한 존재의 의미,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는 은폐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김춘재의 풍경은 어둠을 통해 익숙한 삶의 방식을 벗어난 상태이고, 어둠 자체를 통해 우리 삶의 참모습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춘재의 풍경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다.
5.
작가는 풍경이 어떤 특정한 장소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관념이나 상상 속의 풍경도 아니다. 현실의 풍경이지만 우리가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순간은 길고 긴 여정을 거쳐야 한다. 즉 우리가 세상을 새롭게 조망하고 현실을 다시 바라보아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여기에는 직선의 시간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하는 시간이 흐른다. 그래서 자세히 김춘재의 화면을 보면 낯설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그 풍경은 우리와 함께하는 풍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김춘재의 풍경은 현실이 자연을 통해 내면화된 삶의 풍경이다. 이러한 내면화는 자연 대상과 삶의 현실에 대한 정서적 인식이 주체의 관점에서 수용하여 재구성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나타나는 자연풍경은 쓸쓸한 상념에 휩싸인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감성을 통해 축적되고 내면화된 풍경이다. 관조와 욕망의 정화를 통해 예술적 정서와 자연 본연의 모습을 조화시키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며 우리의 사유의 근본을 철저하게 깨닫고, 나와 자연의 연결점을 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김춘재의 작업이다. 개인적 정서를 머무르게 하지 않고 자연 속으로 채색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을 정화하고 정감어린 자연의 세계로 다가서게 하는 것, 이러한 김춘재의 작업이 바로 우리 삶의 빈자리를 조용히 채워주는 예술인 것이다.
The Blank Space in Life
Kim Jin-yeop (Art Critic)
1.
Landscapes in Kim Choonjae's works are dark. However, as Paul Klee said “Art does not reproduce the visible, rather, it makes visible,” Kim Choonjae wishes to show us what is hidden in the landscape rather than the landscape itself. While the darkness emphasizes the landscape, the distant darkness that seems to engulf the landscape ceases all stories. Such silence cannot be recognized by the senses, contemplative meditation, or introspection. The landscape created by the darkness can only be understood through existential self-consciousness because the landscape is created by essentially intuiting reality rather than transcending it.
2.
Kim Choonjae, who majored in Oriental Painting, says that he still works on oriental paintings. Perhaps, this is why his canvas shows the composition of a traditional oriental painting while the blank space is expressed in darkness, leading to a difference from the oriental painting.
In the early days of his work, he mainly worked on urban landscapes and tried to capture self-portraits of the time when he was experiencing the identity crisis and confusion in his life. At the same time, he thought more deeply about the role of art and the job as an artist. The urban landscapes that leave distorted traces of his early days are the result of such agony.
As Kim Choonjae started focusing on his current landscape works a few years ago, he began to feel positive about art and the profession as an artist. He reached his current works through intense efforts. This might be why the landscape pieces created while he was overcoming times of skepticism and pain come across as deeply emotional and appealing.
3.
The common characteristic that appeared in the process of him transferring traditional oriental paintings to Western paintings is the background, especially the black blank space. This black background goes beyond the expression of emptiness in the blank spaces of the oriental paintings. Additionally, these black blank spaces are very solid in the sense that all thought processes are precisely concentrated.
The dark background does not just simply emphasize the landscape or try to engulf it. Like the “empty space within myself,” the landscape and darkness are like one single body. Since the cause of pain and despair lies in the uncertainty of existence, “contrary thinking” is necessary to find one’s existence in the process of life. Kim Choonjae shows the true landscape through a reversed perspective which is different from the existing one.
While the traditional oriental paintings show changes in perspectives based on the landscape in the distance, Western paintings continue to change in the near landscape. Kim Choonjae’s works transform this process of transition between Eastern and Western paintings into a multi-person perspective. The process of harmonizing the blank space of darkness, the external distant landscape, and the internal near landscape simply means the expansion of the formative language, but in fact, it expands the artistic depth and breadth of communication through a chain of recognition as well.
The characteristic of this method is that it begins with the denial of one's own existence, which is pushing oneself and work to the limit, and a new world appears and new horizons that make up that world are revealed at the end of the work. Only when one overcomes futility and pain and reaches the extreme level, the true form of ‘emptiness’ reveals. Therefore, Kim Choonjae's work is not a heavy, closed space, but a lively open space.
4.
Kim Choonjae’s works skillfully harmonize the opposites of “reality” and “symbol.” The artist builds a new formative world that has never existed before by combining negative symbols and positive aspects of the existence of reality from the social system into the same horizon. However, such amalgamation occurs in the realm of nature, not in ideas or concepts.
The author understands humans and nature as “beings together (mit-sein)” rather than beings in opposition by directing his senses toward nature, and he created humans and nature as “co-inhabitants (mit-leben)” of the world made in the existential situation of the world. The screen composed of rivers and forests is not entities with separate values, but the ones that express reality and inner life together, thereby filling the disharmony of daily life. Rather than simply looking at nature as an object of appreciation or conquest, he utilizes the rivers, mountains, and trees that humans live with as elements that can fill the empty spaces of us.
Ultimately, Kim Choonjae talks about life. The dark background is not just for immersion in the canvas or the inner order and balance of the self. Rather than simply presenting darkness as a reflection of the self, the artist represents darkness by accompanying a true awareness of the reality of the real life we live in.
In order for the essence of existence to reveal itself, it must escape from its concealed state and manifest itself. However, this concealment is not an obstacle but rather a condition of human existence. A familiar way of life in everyday life is concealment. However, the true meaning of existence and the will for a new life through the harmony with nature must escape concealment. Therefore, Kim Choonjae's landscape is a state that we escape the familiar way of life through darkness, and the true nature of our lives is revealed through the darkness itself. Threfore, his landscapes are not simply the ones passing by.
5.
The artist says that the landscape does not refer to any specific place. However, it is not a landscape of ideas or imagination. It is the landscape from reality, but we must go through a long, long journey to reach the moment we can see that landscape. In other words, it is the landscape that can be only seen when we take a new look at the world and view reality again. Here, time flows with the past, present, and future rather than flowing like a straight line. Thus, if you look closely at his canvas, you can notice that it is unfamiliar. However, as a certain amount of time passes, we realize that the landscape is the one that stays with us.
Kim Choonjae's landscape is the one of life in which reality is internalized through nature. This internalization refers to the emotional recognition of natural objects and the reality of life, which is accepted and reconstructed from the subject's perspective. Therefore, the natural landscape that appears here is not the one engulfed in lonely thoughts, but the one accumulated and internalized through the sensibility of confronting reality. It harmonizes artistic emotions and the natural appearance of nature through contemplation and purification of desires.
Kim Choonjae’s works are about facing reality, thoroughly realizing the fundamentals of our thoughts, and poetically expressing the connection between me and nature. His works purify our lives and bring us closer to the emotional world of nature by not letting personal emotions linger and coloring them into nature. These works of Kim Choonjae are the art that quietly fills the empty spaces in our lives.